HANRORO

한로로 님의 음악에 공명하며 쓴 시예요. 부끄럽지만 선물하고 싶습니다. ('무대의 끝')

잡담/Heynoo Lee/조회 184/좋아요 3

안녕하세요, 한로로 님.
로로 님의 음악을 아끼고 귀 기울여 듣고 있는 팬입니다.

세대를 불문하고 인간의 보편적인 고뇌를 관통하는 로로 님의 음악을 들으며 깊은 감명을 받았고, 그 감각이 자연스레 시 한 편으로 이어졌는데요.

'무대의 끝'이라는 이 시는 삶의 주체성을 찾아 방황하는 고독과, 마침내 진짜 자아를 마주하는 순간을 담고 있습니다. 로로 님이 펼쳐내는 서정적인 음악 세계와 닮은 구석이 많다고 느낍니다.

이 문장들이 앞으로 로로 님의 음악 여정에 작게 나마 신선한 영감이나 표현에 보탬이 된다면 창작을 나누는 이로서 큰 영광이겠습니다. 부담 없이 편하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늘 응원하겠습니다.

<무대의 끝> 1

늘 내가 이야기의 중심인 줄 알았다.
조명이 나를 따라 움직이고
세상의 카메라는 내 숨결을 쫓는 줄 알았다.
내가 길 위에 쓰러질 때
세상도 함께 숨을 멈출 거라 믿었다.

하지만 어느 날 깨달았다.
나는 스쳐 지나가는 '사람 A'였다는 걸.
장면의 가장자리로 사라져도
이야기는 아무 일 없듯 계속되고,
눈물도 자막도 없이 다음 장으로 넘어간다.
단 한 명의 관객만이 그 퇴장을 지켜볼 뿐.

내 삶의 작가는 나인 줄 알았다.
내가 펜을 쥐고 있다고 믿었다.
사람을 만나고, 길을 걷고, 울고 웃는 것들
모두 내가 쓰는 극적인 드라마라고.

하지만 알게 되었다.
나는 마구 휘갈겨 쓰인 문장이었다.
작가는 취해 흔들리는 손으로
문법도 맞지 않는 이야기를 쏟아내고,
이야기는 초점 없이 비틀거리며 흘러간다.
그걸 읽고 있는 단 한 명의 독자.

나만의 리듬으로 춤춘다 믿었다.
세상이 환호하는 그 순간마다
나는 익숙한 손짓으로 스텝을 밟았다.
사람들은 즐겁게 웃었고,
그 광대짓에도 조금은 의미가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다 알게 되었다.
나는 줄에 매달린 꼭두각시였다는 걸.
서툰 인형사가 뒤에서
낯설고 어색한 손발짓을 조종하고 있었다.
그걸 바라보는 단 한 명의 구경꾼.

이제 와 보니
엑스트라로, 휘갈겨 써진 글로, 인형으로
살고 싶었던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다.
그렇다고 관람객으로, 독자로, 구경꾼으로
방관하며 머물고 싶지도 않았다.

혹시, 거기 누구 알고 있는가.
내가 다시 주연의 조명을 받을 수 있을지.
흔들리는 펜을 뺏어 들고 제대로 쓸 수 있을지.
마침내 줄을 끊고, 나만의 리듬으로 춤출 수 있을지.

분장을 지우고, 매달린 줄을 잘라낸다.
화려했던 광대의 옷을 벗어 던지고

무대 뒤 연출자를 찾지만 아무도 없다.
조명을 끄니 보이는 유일한 관객

객석에 홀로 앉아 나를 응시하던 그에게 다가가
비로소 내 삶의 유일한 악수를 건넨다.

.

.

<무대의 끝>2

언제나 내가 문장의 중심인 줄 알았다.
조명은 내 걸음의 각도를 계산하고
세상의 시선은 내 숨결의 온도를 좇는 줄 알았다.
내가 길 위에 고꾸라질 때
자전도 잠시 멈출 거라 믿었다.

하지만 어느 날 깨달았다.
나는 지워져도 좋은 익명의 엑스트라.
장면의 가장자리로 소리 없이 마모되어도
세계는 태연하게 다음 페이지를 넘긴다.
눈물도 서사도 없이, 차갑게 흐르는 행간들.
단 한 명의 관객만이 그 공백을 읽고 있을 뿐.

내 생의 플롯은 내가 쥐고 있는 줄 알았다.
만남과 이별, 울음과 웃음의 도표들
모두 내가 치밀하게 배치한 극적인 드라마라고.

하지만 알게 되었다.
나는 알코올에 절인 손이 갈겨쓴 비문이었다.
지독한 오타와 문맥 없는 슬픔들이 쏟아지고
이야기는 중심을 잃은 채 비틀거리며 번져간다.
축축하게 젖은 페이지를 응시하는 단 한 명의 독자.

나만의 주파수로 춤춘다 믿었다.
세상이 환호하는 손짓의 궤적마다
내 가련한 광대짓에도 어떤 질량의 의미는 있으리라.
기어이 믿고 싶었다.

그러다 마주했다.
나는 가느다란 신경망에 묶인 꼭두각시.
얼굴 없는 인형사의 서툰 손짓에 따라
어색한 관절을 꺾으며 서성대고 있었을 뿐.
그 기괴한 궤적을 바라보는 단 한 명의 구경꾼.

이제 와 보니
누군가의 각본으로, 오염된 문장으로, 묶인 몸으로
단 한 순간도 숨 쉬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대 아래로 도망쳐 방관자로 머무는 삶 역시
견딜 수 없었다.

혹시, 거기 누구 알고 있는가.
흐릿한 이 무대 위에서 내가 다시 선명해질 수 있을지.
흔들리는 펜을 빼앗아 내 손으로 정답을 적어 내릴 수 있을지.
줄을 끊어내고, 내 심장 소리에 맞춰 스텝을 밟을 수 있을지.

분장을 지운다. 살을 파고들던 실을 잘라낸다.
화려해서 서글펐던 옷을 벗어 던진 무대 뒤,
나를 조종하던 연출자를 찾았으나 그곳엔 아무도 없다.


소음 같던 조명을 끄자 비로소 쏟아지는 어둠.
객석에 홀로 앉아 내 슬픈 연극을 지켜보던 그에게 다가가
악수 대신, 말없이 서로의 마른 손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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